2011년 12월 23일 금요일

[윤홍식의 채근담 강의] 13. 세상을 살아가는 최고의 방법

좁은 길, 좁은 곳에서는 한 걸음 양보하여
남이 걸을 수 있게 해주고,

맛있는 음식은 1/3을 덜어서
남에게 양보하여 맛보게 하라.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최고의 안락한 법이다.  

徑路窄處 留一步 與人行
滋味濃的 減三分 讓人嗜
此是涉世一極安樂法 (전집-13장)
 

다른 사람들과 함께
좁은 길을 걷거나 좁은 곳을 걷다 보면,
은연중에 경쟁이 시작됩니다.

서로 빨리 가고 싶어도
장소가 좁아서 운신의 폭이 적으니,
자연히 서로 신경전이 붙게 되죠.

우리가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탈 때,
남과 경쟁하는 나 자신을 떠올려보면
이 상황이 충분히 짐작이 되실 겁니다.

우리는 누구나 ‘나 중심’의 마음,
즉 인심人心을 가지고 있으니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을 죄악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심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니거든요.

그러나 인심이 자신을 위해 적정선을 넘어설 때,
그것은 나와 남에게 고통을 주는 악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경書經에서 전하길,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미묘하다!”라고 한 것입니다.

“인심은 오직 악하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위태롭다!”, “유혹에 취약하다!”,
“악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라고 지적할 뿐입니다.
 
군자는 인간의 욕망을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인심은 철부지 같은 존재이니,
늘 그 일거수 일투족을 깨어서 알아차려야만
우리가 걸어야 할 인간의 길을
무사히 걸을 수 있다고 말할 뿐입니다.

왜 이렇게 악에 취약하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인심은 철저히
‘나 중심’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좁은 길, 좁은 곳을 걷는 순간입니다.

소소한 일상의 한 순간이지만
우리 마음이 솔직히 드러나는 자리이니,
이 자리에서 한 번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을 내딛듯
속 시원하게 남에게 길을 양보해주라는 것입니다.

좁은 길, 좁은 곳에서
남에게 길을 내주는 마음,

이것은 일상의 작은 일이나,
우리 양심을 한 치 자라게 하고
위태로운 인심을 진정시키는 일상의 작은 도발이 될 것입니다.

이런 미묘한 알아차림과 실천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소소한 일상의 판단과 행위가 쌓여서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가니까요.

이와 상응할만한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맛있는 요리를 먹을 때,
눈앞의 음식에 이성을 잃고
자신의 식욕의 충족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방향을 바꾸어보는 일입니다.

어떤 음식이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의 1/3을 덜어서 다른 사람에게 맛보게 해보십시오.
자신의 인심은 서운해 할지 모르나,
자신의 양심은 흐뭇해하며 한 치 자라날 겁니다.

처음엔 어색할지라도 정신을 모아서
한 번씩 해보자는 것입니다.

이 일상의 소소한 반란들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은 인간적 욕망의 충족 외에도,
우리의 내면에는 또 다른 희열과 만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양심의 만족’에서 오는 희열입니다.
지극한 조건 없는 안락감입니다.

채우고자 할 때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비우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야릇하고 미묘한 쾌감입니다.

이 안락감을 늘 누리는 삶이야말로
지극히 행복하고 안락한 삶이며,
늘 깨어있는 삶이고,
지혜롭고 양심적인 삶입니다.

흔쾌히 길을 양보해봅시다!
너그럽게 음식을 양보해봅시다!

혹시라도 그러한 일을 후회하는 마음이
내면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면,
아직 우리의 내면이 철이 없어 그러는 것이니
미소를 잃지 않으며 잘 설득하고 타일러 봅시다.

이것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요령입니다.

2011년 12월 11일 일요일

훈민정음과 역易철학



지난주 주역 강의 중에서 요즘 '뿌리깊은나무' 드라마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에 대한 내용이 있어 발췌해 보았습니다.
훈민정음이 易의 철학을 근간으로 창제되었음을 설명해 주시는데
이걸 보면 드라마에서 소희와 함께 그려나가는 모습은 좀 오류가 있는 듯 싶더라구요.
모음 체계가 '하도'와 그대로 맞아 들어가는 모습은 경이롭다는 느낌마저 들더군요.

주역을 공부하시면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다시 함 보시면 또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실 듯 싶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12월29일 목요일 고전콘서트 (@교대역 토즈)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윤홍식의 채근담 강의] 12. 영원한 삶을 사는 법

살아서는 마음자리를 관대하게 열어놓아,
사람들로 하여금 불평의 탄식이 없게 해야 한다.

죽어서는 그 혜택이 오래도록 흐르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없게 해야 한다.

面前的田地 要放得寬 使人無不平之歎
身後的惠澤 要流得久 使人有不匱之思(전집-12장)
 
[중용]에서 공자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군자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군자는 길을 따라 걷다가
길에서 쓰러져야 하니,
나도 그만둘 수가 없다.”

군자는 양심을 따르는 길을 평생 걸어가다,
그 길에서 죽는 것을
일생의 사명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강압 때문도 아니요,
커다란 이익이 되어 그런 것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순수한 마음인 ‘양심’이
그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마음을 회복한 군자는
이러한 양심을 저버릴 수가 없어서,
부득이 하게 이 길을 죽는 그날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이 ‘양심’이 있는 한,
오직 이 길이 있을 뿐입니다.

일생 양심을 밝히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군자는,
살아있는 동안 양심이 원하는 대로
나와 남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나와 남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길만을 걸으니,
남들에게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합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닌 것을 늘 알아차리고 살아가니,
자신에게만 행복한 일을 하지 않고
나와 남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선업을 즐겨 짓습니다.

나 자신만을 위한 행동은
돌아볼수록 양심의 가책이 되지만,
나와 남 모두를 위한 행동은
돌아볼수록 우리 모두에게 행복이 됩니다.

언제나 늘 행복을 주는 불멸의 선업은,
우리가 죽은 뒤에도 우리를 인도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무한한 혜택을 베풀 것입니다.

남이 부러워할만한 위대한 일을 해야만,
불멸의 선업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과거 이 길을 걸으셨던 군자들께서 남기신
은택의 힘으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이 길을 죽는 그 순간까지
포기하지 말고 걸어서,
이후 이 길을 걸어야 할 모든 이들에게
한없는 혜택을 줄 수 있는,
불멸의 선업을 쌓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살아서는 남들에게
한없는 만족을 줄 수 있으며,
죽은 뒤에도 필요한 이들에게
끝없는 혜택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랑(仁)과 정의(義), 예절(禮)과 지혜(智)를
4기둥으로 하는 불멸의 선업은,
시공을 초월하여 나와 남 모두에게
무한한 행복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이에게 웃음을 줄 것이며,
괴로워 울부짖는 이에게 평안을 줄 것이며,
비탄에 빠진 이에게 희망을 줄 것입니다.

그냥 삶의 매 순간,
우리의 순수한 마음이 원하는 대로,
우리의 양심이 지시하는 대로,
살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일체 만물은
타고난 ‘본성’ 그대로 순수하게 살아갈 때,
가장 참되고(眞) 선하며(善) 아름답습니다(美).

우리의 본성 그대로의 마음인 순수한 양심은,
우리가 자신만을 챙기고 남에게 고통을 줄 때 괴로워하며,
우리가 자신과 남을 모두 행복하게 할 때 크게 기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