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길, 좁은 곳에서는 한 걸음 양보하여
남이 걸을 수 있게 해주고,
맛있는 음식은 1/3을 덜어서
남에게 양보하여 맛보게 하라.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최고의 안락한 법이다.
徑路窄處 留一步 與人行
滋味濃的 減三分 讓人嗜
此是涉世一極安樂法 (전집-13장)
다른 사람들과 함께
좁은 길을 걷거나 좁은 곳을 걷다 보면,
은연중에 경쟁이 시작됩니다.
서로 빨리 가고 싶어도
장소가 좁아서 운신의 폭이 적으니,
자연히 서로 신경전이 붙게 되죠.
우리가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탈 때,
남과 경쟁하는 나 자신을 떠올려보면
이 상황이 충분히 짐작이 되실 겁니다.
우리는 누구나 ‘나 중심’의 마음,
즉 인심人心을 가지고 있으니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을 죄악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심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니거든요.
그러나 인심이 자신을 위해 적정선을 넘어설 때,
그것은 나와 남에게 고통을 주는 악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경書經에서 전하길,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미묘하다!”라고 한 것입니다.
“인심은 오직 악하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위태롭다!”, “유혹에 취약하다!”,
“악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라고 지적할 뿐입니다.
군자는 인간의 욕망을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인심은 철부지 같은 존재이니,
늘 그 일거수 일투족을 깨어서 알아차려야만
우리가 걸어야 할 인간의 길을
무사히 걸을 수 있다고 말할 뿐입니다.
왜 이렇게 악에 취약하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인심은 철저히
‘나 중심’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좁은 길, 좁은 곳을 걷는 순간입니다.
소소한 일상의 한 순간이지만
우리 마음이 솔직히 드러나는 자리이니,
이 자리에서 한 번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을 내딛듯
속 시원하게 남에게 길을 양보해주라는 것입니다.
좁은 길, 좁은 곳에서
남에게 길을 내주는 마음,
이것은 일상의 작은 일이나,
우리 양심을 한 치 자라게 하고
위태로운 인심을 진정시키는 일상의 작은 도발이 될 것입니다.
이런 미묘한 알아차림과 실천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소소한 일상의 판단과 행위가 쌓여서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가니까요.
이와 상응할만한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맛있는 요리를 먹을 때,
눈앞의 음식에 이성을 잃고
자신의 식욕의 충족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방향을 바꾸어보는 일입니다.
어떤 음식이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의 1/3을 덜어서 다른 사람에게 맛보게 해보십시오.
자신의 인심은 서운해 할지 모르나,
자신의 양심은 흐뭇해하며 한 치 자라날 겁니다.
처음엔 어색할지라도 정신을 모아서
한 번씩 해보자는 것입니다.
이 일상의 소소한 반란들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은 인간적 욕망의 충족 외에도,
우리의 내면에는 또 다른 희열과 만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양심의 만족’에서 오는 희열입니다.
지극한 조건 없는 안락감입니다.
채우고자 할 때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비우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야릇하고 미묘한 쾌감입니다.
이 안락감을 늘 누리는 삶이야말로
지극히 행복하고 안락한 삶이며,
늘 깨어있는 삶이고,
지혜롭고 양심적인 삶입니다.
흔쾌히 길을 양보해봅시다!
너그럽게 음식을 양보해봅시다!
혹시라도 그러한 일을 후회하는 마음이
내면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면,
아직 우리의 내면이 철이 없어 그러는 것이니
미소를 잃지 않으며 잘 설득하고 타일러 봅시다.
이것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요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