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을 사귈 때는
늘 30%의 의협심을 지녀야 하며,
인격을 만들 때는
늘 한 점 참마음을 보존해야 한다.
交友 須帶三分俠氣
作人 要存一點素心(전집-15장)
‘의협심’이라는 것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남을 돕기 위해
희생을 무릅쓰는 정의로운 마음입니다.
한자로 ‘협俠’이라는 글자를 풀어보면,
‘양심’이 늘 깨어있는 사람은,
남을 나처럼 여겨 동정하며(측은지심),
불의를 보면 부끄러워하고 미워하기에(수오지심),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사람됨(人)이 남들(人人)을 양 옆에 품어 주는
큰 사람(大)이라는 뜻입니다.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협객俠客’이란
바로 이러한 큰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무공만 높은 사람들이 아니죠.
마음에 양심이 살아 있어서,
남의 어려운 사정을 모른 척 하지 못하고,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 남을 돕는 의로운 사람들입니다.
모름지기 벗을 사귈 때는
반드시 이러한 ‘의협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벗은 나의 스승이자 형제이니,
다른 누구보다도 그 어려운 사정을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벗을 대할 때는
늘 이 의협심을 30% 정도는 가지고 대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정에만 너무 골몰하여,
벗을 어려운 처지를 무시해서는
자신의 양심이 차차 어두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됨을 닦아가는 것은
다른 것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순수한 마음이자 참마음인 ‘양심’을
그대로 복원하는 데 있습니다.
하늘과 같이 위대한 성인도
다른 것을 닦아서 그 자리에 간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이 ‘양심’을 잘 보존하고 확충했을 뿐입니다.
양심은 우리 내면에서 그 힘이 미약합니다.
그러니 늘 깨어서 양심을 보살피고 양심을 확충시켜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 오감이
양심의 뜻과 하나가 되어 작동하도록 닦아가야 합니다.
[맹자]에서 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부분은 아주 적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이 부분을 버리고,
군자는 이 부분을 잘 보존한다.”
그 아주 적은 부분은 바로 우리의 ‘양심’입니다.
우리의 ‘참마음’인 양심을 버리는 순간,
우리는 짐승과의 차이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아니, 얼마든지 짐승보다 더한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양심을 보존해야 합니다.
아무리 권력에 정점에 선 사람도,
아무리 부귀를 손안에 얻은 사람도,
‘양심’이 없다면 참으로 값어치가 없습니다.
힘이 없어 억지로 참고 있는 사람들과
물욕에 눈이 멀어 아부하는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어느 누가 동정심도 의협심도
올바른 판단력도 남에 대한 배려도 없는
그러한 사람과 단 한순간이라도 같이 있고 싶겠습니까?
그러니 자신의 인격을 다듬어
성인에 이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은,
그 유일한 길인 ‘양심의 보존’을
참으로 소중히 챙겨야 하겠습니다.
‘참마음’을 간직하지 못하고서는,
‘참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양심’은 우리의 ‘중심봉’이자,
가장 중요한 ‘알짬’이 되는 마음입니다.
이 양심을 놓치는 순간,
우리의 인격은 모든 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아무리 ‘양심’이 미약하더라도,
‘한 점의 불씨’만 남아있다면,
얼마든지 태양처럼 광명한 불로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참사람이 되고자 하는 모든 이는,
언제 어디서나 ‘한 점의 양심’을
잘 보존하고 챙겨야 할 것입니다.
양심을 위협하는 ‘3가지 악독한 마음’ 즉,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아무리 우리를 위협해오더라도,
반드시 “모른다!”를 통해 그들을 물리치고,
‘양심’이라는 우리의 ‘알짬 마음’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이 ‘참사람’이 되는 최고의 요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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