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애를 받고 이익을 얻는 것은
남보다 앞서지 말며,
덕을 밝히고 공업을 세움에 있어서는
남보다 뒤쳐져서는 안 된다.
보수를 받을 때는
분수 밖을 벗어나서는 안 되며,
행실을 닦을 때는
분수 안으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
寵利 毋居人前 德業 毋落人後
受享 毋踰分外 修爲 毋減分中(전집-16장)
우리의 ‘에고’는
늘 ‘나’를 먼저 챙깁니다.
그러다보니,
남보다 더 총애를 받고 싶고
남보다 더 물질적 이익을 얻고 싶은 것은,
우리 에고의 당연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을 너무 추구하다 보면,
자신의 본래 모습인 ‘양심’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일을 당해서는,
섣불리 욕망에 취해
남을 앞서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잘 챙겨서,
혹시 에고의 욕망에 심취하여,
양심의 순수함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를
세밀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니 애초에 그런 일을 당해서는,
남보다 앞서려는 마음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채근담]은 양심을 밝히는 것을
최고의 보람이자 맛으로 여기는,
‘군자의 길’을 논하는 책이라는 것을요.
그러니 자신이 과연 군자의 길을 추구하는지 잘 돌아보시고,
그러한 길을 진심으로 추구하신다면,
이러한 절실한 가르침을 반드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논어]에서 “군자는 ‘정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군자는 비록 ‘에고의 충족’에 있어서는
늘 남보다 뒤쳐지기를 바라지만,
‘양심의 충족’에 있어서는
절대로 남보다 뒤쳐지지 않아야 합니다.
양심에 뿌리를 둔
사랑(仁)과 정의(義), 절도(禮)와 지혜(智)를,
마음과 언행으로 실천하는 것을
‘덕德’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늘 이 덕이 밝게 드러나게 해야 하며,
이러한 덕을 바탕으로
나와 남을 모두 살리는 큰 사업을 일으켜야 합니다.
덕을 밝히고 공업을 세움은,
모두 우리 내면의 ‘양심’을
세상에 밝게 밝히는 것일 뿐입니다.
‘양심’을 따르는 길을 걷는 군자는
자신이 일한 보수를 받을 때,
늘 자신이 실제 일한 한도 내에서 받기를 원합니다.
절대로 남보다 많은 보수를 바라거나,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는
보수를 바라지 않습니다.
자신의 몫 이상을 바라는 자를
어찌 정의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군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라면,
이러한 마음을 그냥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자신이 일한 보수 이상을
바라고 또 받게 되면,
그의 에고는 ‘이익’을 향해 치달리기 시작하며,
그의 ‘양심’은 서서히 가려지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언행’을 닦음에 있어서는,
절대로 자신의 분수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한계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지금 처지가 사랑과 정의, 절도와 지혜를
실천하기에 부족함이 많더라도,
절대로 자신의 처지에 안주하여 뒤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늘 자신의 부족한 점을 살피고 보완하며,
성인들의 덕행을 실천할 수 있도록
끝없이 정진합니다.
이것이 군자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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