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고의 처량함을 취하지 말라
도와 덕에 머물며 이를 잘 지키는 자는
한때에 적막할 뿐이나,
권력과 세력에 의지하고 아첨하는 자는
만고에 처량하다.
통달한 사람은 사물 밖의 물건을 보며
이 몸뚱이 뒤의 몸뚱이를 생각하여,
차라리 한때의 적막함을 받을지언정
절대로 만고의 처량함을 취하지 않는다.
棲守道德者 寂寞一時 依阿權勢者 凄凉萬古
達人觀物外之物 思身後之身
寧受一時之寂寞 毋取萬古之凄凉(전집-1장)
‘도道’란 ‘머리’(首)로 밝게 헤아려야만
제대로 ‘걸을'(辶) 수 있는 ‘길’을 말하니,
우주는 물론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따라 걸어야만 하는 ‘큰 길’을 말합니다.
여기서 ‘하늘의 길’(天道)과 ‘땅의 길’(地道),
그리고 ‘인간의 길’(人道)이 나옵니다.
이 모든 길들은 그 내용에 있어서,
하늘이 ‘춘하추동’으로 나타내 보이는
‘낳음’(生)과 ‘기름’(長),
‘거둠’(收), ‘저장’(藏)’의 원리에 불과합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니
‘인간의 길’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길인 ‘사랑’(仁)은 봄의 ‘낳음’의 원리 그대로이며,
‘예절’(禮)은 여름의 ‘기름’의 원리 그대로이며,
‘정의’(義)는 가을의 ‘거둠’의 원리 그대로이며,
‘지혜’(智)는 겨울의 ‘저장’의 원리 그대로입니다.
‘덕德’이란 인간이 영원한 진리인 ‘도道’와
하나로 합하는 마음인 ‘곧은 마음’(直心, 悳)
즉 순수한 마음인 ‘양심’(良心)을,
현실에서 때와 장소에 맞게 실천하는 것(行)을 말합니다.
‘인간의 길’(人道)에 순응하는 순수한 마음인 ‘양심’, 즉
‘사랑’에 순응하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
‘예절’에 순응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정의’에 순응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
‘지혜’에 순응하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자신이 처한 상황에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 바로 ‘덕’인 것입니다.
이러한 ‘도와 덕’에 머물며 이를 잘 지키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나와 남 모두를 살리는
‘사랑’과 ‘정의’, ‘예절’과 ‘지혜’를 실천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소인배들의 원망을 사서
한때의 고립과 적막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고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보편적 양심을 따른 행위는,
언젠가 반드시 뭇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마련입니다.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양보하고
불의를 배격하고,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하는,
양심적이고 공정한 행위가
어떻게 영원토록 오해받을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한때의 오해는 벗겨지고
만고의 기림과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면 누구나 이 순수한 마음인
‘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질의 것은 동질의 것을 알아보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양심은 양심을 반드시 알아보게 됩니다.
물론 타인의 인정과 존경에 우선하여,
언제나 ‘양심’의 인정과 인가가 있고
양심이 주는 선물인 내면의 ‘희열’과 ‘만족감’이 늘 함께하기에,
타인이 나를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그는 절대로 외롭거나 적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과 세력에 의지하고 알랑거리는 소인배들은,
이미 스스로의 양심에게 버림을 받아
결코 이러한 내면의 희열과 만족감을 누리지 못할 뿐 아니라,
언젠가는 그 추악한 가면이 만천하에 벗겨져
당대는 물론 천 년 만 년 모든 양심을 지닌 이들의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나와 남을 모두 이롭게 하고자 하는
양심을 지니고 있기에,
양심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긴 그들의 행적은
만고의 웃음꺼리가 되는 것입니다.
타인은 차치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니,
그 신세 참으로 만고에 처량할 뿐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사정에 밝은 ‘통달한 사람’(達人)은
도와 덕을 늘 챙기고 지켜서,
언제 어디서나 나와 남을 두루 살리는 양심을 꿋꿋이 실천에 옮깁니다.
그래서 눈앞에 존재하는 현상계의 사물들이 아닌,
현상계를 초월한 절대계의 영원한 진리와 하나로 합하는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상계 안에 존재하는 자신의 ‘물질의 몸’(肉身)이 아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자신의 ‘순수한 마음’인 ‘진리의 몸’(法身)을 생각합니다.
결국 ‘달인’은 눈앞의 사물들로 인한 이해관계나
부귀영화의 주체가 되는 자신의 육신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순수한 마음’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면에 존재하는 하느님 자리인
‘순수한 마음’을 따르다가 한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절대로 내면의 양심을 더럽혀
천 년 만 년 양심의 지탄을 받을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한때의 물욕, 성욕, 명예욕, 권력욕을 얻기 위해,
만고에 영원히 빛날 자신의 순수한 양심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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