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5일 화요일

주자(朱子)의 심법(心法) - 주자어류에서

 주자(朱子) 저, 2003. 9. 20 윤홍식 번역 
 

1. 사람이 혼란스러울 때는 마음이 밝지 않다. 자신이 혼란한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즉시 마음이 밝아진다.

2. 서암화상 같은 이는 매일 항상 자신에게 “주인공이 또렷한가?”라고 물어 보았고, 또 스스로 “또렷하다”라고 대답하였다. 요즘 학자들은 오히려 그렇지 못하다.

3. 내가 보기에 공부의 핵심은 오직 “정신을 차리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반드시 몸소 체험해서 스스로 분명히 해야 한다.

4. 몸가짐이 방종한 것은 단지 마음이 어둡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려 깨어있도록 하면 저절로 밝아지고 정신이 밝아지면 자연 몸가짐이 방종하지 않는다.

5. 사람에게는 주재하는 하나의 마음이 있으니, 항상 불러서 일깨워야 한다.

6. 다만 자주 마음을 일깨울 뿐이니, 오래 되면 저절로 익숙해진다.

7. 배우는 사람이 늘 해가 떠오르듯이 이 마음을 일깨운다면, 많은 사사로운 것들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본래 밝게 빛나며 넓고 크니, 자신은 다만 조금의 힘을 들여 그것을 일깨우고 보살피기만 하면 된다. 억지로 힘을 들이지 말라. 힘을 들이는 것은 도리어 옳지 않다.

8.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이 또렷이 존재하게 한다면 이미 8,90% 정도는 된 것이다. 도리를 살피다가 막히는 곳이 생기면, 오히려 이 막힌 곳에서 이해해 간다. 학문을 할 때에는 우선 한 곳에 마음을 모아야 한다. 이 한 가지를 이해할 때에는 우선 이 한 가지만 이해해갈 뿐이다. 걸어갈 때는 오직 걸어가는 데 마음을 두며, 앉을 때는 오직 앉는 데 마음을 둔다.

9. 이제 일상생활에서 한가로울 때 지금 이 순간에 또렷하게 마음을 모으면, 이것이 바로 “희노애락이 발동하지 않는 중(中)”이며, 바로 “온전한 하늘의 이치(天理)”이다. 일이 닥치면 그 옳고 그름을 따르니, 옳은 것은 곧 하늘의 이치이고 그른 것은 하늘의 이치를 어기는 것임을 저절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항상 이렇게 이 마음을 추수려서 모아두면, 곧 저울을 쥐고 사물을 재는 것과 같다.

10. “흩어진 마음을 모으라(求放心)”는 말에 대한 이런저런 논의는 마치 불가와 도가에서 말하는 “입정(入定)”과 같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서 끝나 버리지만, 우리들은 오히려 이 마음이 주재가 되어 안정될 때 비로소 이것을 바탕으로 바깥일을 하니, 이 점에서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

11. 세상에는 단지 선(善)과 악(惡) 이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천지간의 음양을 예로 들어보자. 바람이 온화하고 태양이 따뜻하면 만물이 생겨나는데, 이것은 선(善)의 뜻이다. 여러 음(陰)의 기운이 작용하기 시작하면 만물이 시들고 메말라 간다. 사람에게 악(惡)도 그러한 것이다. 천지(天地)의 이치는 원래 음의 기운을 막아서 항상 이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학자는 반드시 선(善)과 악(惡)에 대해 두 경계의 갈림을 분명하게 알도록 해야지, 미세한 악(惡)이라도 끼어들어 선의 단서가 끊어지게 하지 말라.


12. 마음을 텅 비고 고요하게 할 뿐이니, 오래되면 저절로 밝아진다.

13. 사람의 마음은 본래 밝다. 다만, 사물과 일들에 덮이고 가리어 얼굴이 드러난 적이 없기 때문에 도리를 비추기 어려운 것이다. 먼저 덮이고 가리는 것을 걷어내길, 그것이 스스로 드러날 때까지 여러 차례 해 보라. 

14. 사람의 마음은 늘 생각하게 마련이다. 생각할 때는 생각을 해야지, 스스로 억지로 힘들게 억눌러서는 안 된다. 도리어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는다.

15. 사람은 온갖 변화에 통달해야 비로소 마음이 차분해지고 한결같이 모을 수 있다.

16. 항상 정신을 또렷하도록 해야 한다. 오래되면 익숙해져서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자(顔子)는 단지 경(敬)을 지녔을 뿐이다.

17. 사람이 일념으로 깨어있는(敬) 순간, 이 마음은 바로 이 몸에 있게 된다.

18. 마음은 본래 밝은 것이지만, 단지 “이기적 욕구”에 의해 어두워졌을 뿐이다. 이제 학문을 하는 까닭은 그 밝은 것을 더욱 밝히려는 것이다. 마음이 밝으면 이 일에는 이런 도리가 있고, 이 사물에는 이런 이치가 있다는 것을 자연히 알 수 있다.

19. “경(敬)”이란 단지 이 마음 안에 주인공이 깨어서 주재하는 것이다.

20. “경(敬)”이란 온갖 일들에 손을 놓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에 따라 정신을 하나로 모으며 조심하고 삼가하며 방종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21. “경(敬)”이란 단지 마음을 거두는 것일 뿐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하는 것이다.

22. “경(敬)”이란 단지 삼간다는 뜻이다.

23. 정신을 차리기만 하면 바로 “경(敬)”이 거기에 존재한다.

24. 나도 옛날에는 곧장 도달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원래 다른 방법이 없다. 오직 익숙하게 하는 것뿐이니, 익숙해지면 저절로 “경(敬)”의 상태가 오래 갈 수 있다.

25.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일이 없을 때가 없다. 일이 없다면 죽었을 때뿐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많은 일들이 있다. “일이 많아서 어지러우니 나는 우선 정좌(靜坐)를 하겠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 “경(敬)”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일이 앞에 닥쳤는데 스스로 고요해지려고만 하고 완고하게 일에 응하지 않는다면, 바로 마음이 아주 죽어버린 것이다. 일이 없을 때는 경(敬)은 마음속에 있고, 일이 있을 때는 경(敬)은 그 일 위에 있다.

26. 마음을 함양할 때는 반드시 “경(敬)”으로 해야 하고, 일을 처리할 때는 반드시 “의(義)”를 쌓아가야 한다.

27. 반드시 한 순간의 생각이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알아야 한다. 좋은 일이고 해야 할 일이라면 반드시 해야 한다. 혹 이 일에 대해 철저하게 생각하지 못했으면, 반드시 끝까지 생각해야 한다. 좋지 않은 일이면 하지 말라. 스스로 그와 같이 깨닫는 순간 “경(敬)”은 바로 거기에 있다.

28. 그대들이 진보하지 않는 것은 정신과 생각이 하나로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공부가 그렇게 정밀하거나 예리하지 못한 것이다.

29. 모든 것을 내버리고 사물이 이르러도 “내 마음이 간직되어 길러질 때를 기다리자”라고 해서는 안 된다. 또 다만 망연하게 다른 사물을 따라가서도 안 된다.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을 끊어버려야 한다.

30. 일을 만나지 않았을 때는 반드시 마음이 고요해야 한다. 그래야 일에 임해서 마음을 써야 할 때 바로 “힘”이 생긴다.

31 대체로 기질이 속된 것은 따질 필요가 없다. 마음이 평정되면 기질은 저절로 조화로워진다.

32. 마음이 올바르게 되어야 ‘성(性)’이 선한 것을 알 수 있다.

33. 배우는 사람의 공부는 우선 저 느닷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잘라 버리는 것이다.

34. 성현의 수많은 말들은 오직 사람들에게 “천리(天理)를 밝히고 인욕(人慾)을 없애라”고 가르친 것이다. 천리에 밝으면 자연히 학문을 강론할 필요가 없다. 사람의 본성이 본래 밝은 것은, 마치 보배 구슬이 혼탁한 물에 가라앉으면 밝은 빛이 나지 않다가 혼탁한 물을 제거하면 보배 구슬이 저절로 예전처럼 밝아지는 것과 같다. 스스로 욕심에 가려진 것을 안다면 바로 (천리가) 밝아지는 자리이다. 다만 이 밝아진 곳에서 바짝 노력하여 마음을 챙기면서, 한편으로 사물에서 이치를 알아 갈 뿐이다. 오늘 한 사물의 이치를 밝히고, 내일 한 사물의 이치를 밝히면, 마치 군사를 보내 성을 함락시키는 것처럼, 인욕이 저절로 녹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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