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5일 화요일

면우(俛宇) 곽종석 선생의 공부법

2003. 10. 17 윤홍식 역

1. 존심(存心: 마음챙김)
마음은 일각(一刻)이라도 챙기지 못해서는 안되니, 천하의 천가지 변동, 만가지 변고와 추함과 어긋남, 요동과 변란이 모두 이 한 마음(一心)을 잘 챙기지 못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이 없을 때는 마땅히 정신을 바짝 차려서 깨어있게 해야 하니, 어둡고 나태하게 해서는 절대 안된다. (희노애락 미발未發시 수양)
일념(一念)이 막 발동하면 곧바로 그 기미를 성찰(省察)하여 선(善)이면 확충하고 악(惡)이면 막아서, 방탕하고 안일하게 해서는 안된다. (희노애락 이발已發시 수양)
항상 비추어 보아서, 잠시라도 소홀히 하거나 망각해서는 안되니, 이것을 일러 “경敬을 주로 한다(主敬).”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너무 억지로 구속하기를 심하게 하거나, 어쩌다 잠깐 돌이켜보아 그 마음을 챙기고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로 해서는 안 된다.
요령은 오로지 “의도적으로 함과 의도를 두지 않음”의 사이(間)에 있다. 만약 한가한 생각이나 쓸데없는 망상이 일어나면 그 자리에서 끊어 버리고, 바른 생각으로 바꿔야 한다.  

2. 치지(致知: 격물치지)
단지 일용사물(日用事物)의 사이에서 그 의리(義理)의 지극히 당연한 바를 관찰하여, 그 정미(精微)한 곡절(曲折)을 극진히 하는 것이야 말로 치지(致知)의 가장 요긴하고 절실한 곳이다.
조그만 힌트라도 얻게 되면 곧바로 책을 보되, 글자 상에서만 이해해서는 절대 안 되니, 반드시 심상(心上)에서 체인해야 한다. 반복하여 정보를 모으고 찾아서 그 종지를 직접 체험하여 쌓아가기를 오래하면 스스로 뭇 이치가 일관되고 융합되어 사안마다 합치되어 가히 형이상학적 경지에 까지 도달될 것이다. 
만약 만물의 표면적인 것에만 골몰하여 공허한 생각만 일삼으면 황홀하기는 할지 모르나, 결코 진실된 앎을 이루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3. 역행(力行: 힘써 행함)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보면 곧 힘을 써서 행하여야 한다. 또한 마땅히 “진실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마음이 진실하지 않으면 노력하는 마음이 필경은 해이해지고 소홀해지게 마련이다. 마음이 이미 진실하다면, 또한 마땅히 “자세히 살펴서, 신중하게” 행동을 해야 한다. 
대개 사람이 일용(日用)간에 있어서 반드시 마땅히 해야할 일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분수(分數) 안에 있는 일이라면, 싫증내거나 권태로워하는 마음이 싹트게 해서는 안된다.
만약 급하지 않은 일이라면 반성하면서 절도있게 하여야 하나, 너무 자잘하게 힘을 쓸 필요는 없다. 이 또한 “양심(養心: 마음을 기름), 지기(持氣: 기운을 조절함)”의 요령이니, 평상시의 행동을 닦지 않으면 무슨 일을 닦으랴.
학문이 만약 다 알기를 기다린 연후에야 행동하여 시험해 볼 수 있다면, 그 앎이란 것은 죽는 날까지 시행될 날 일이 없을 것이다.
단지 마땅히 스스로 힘을 써야 한다. 남만 부러워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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