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3일 일요일

윤홍식의 신심명 강의

윤홍식의 신심명信心銘 강의

삼조三祖 승찬僧璨 지음
윤홍식 풀이



신심명은 선종의 3조 승찬대사가 지은 마음공부의 명문으로 참선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깨달으려는 분들은 누구나 한번쯤 읽어야 할 명문입니다.
 
'깨어있음은 결코 어렵거나 신비로운 것이 아니다!!' 하는 메시지를 너무도 선명히 보여주십니다.

가히 선종의 가장 뛰어난 명문이라 일컬어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문장이요, 해설입니다.




1. ‘지극한 도’는 조금도 어렵지 않아서 오직 ‘간택함’을 싫어할 뿐이니, (오직 모를 뿐!)
지도무난至道無難이요 유혐간택唯嫌揀擇이니

2. 단지 싫어하거나 아끼지 않는다면 확 트여 명백할 것이다.
단막증애但莫憎愛하면 통연명백洞然明白이니라

3. 미세한 차이가 나도 하늘과 땅처럼 멀어지게 된다.
호리유차毫釐有差하면 천지현격天地懸隔하나니

4. 눈앞에 나타나게 하고 싶거든 순하고 거슬림을 두어서는 안 되니,
욕득현전欲得現前이어든 막존순역莫存順逆하라

5. 거스르고 순함이 서로 다투는 것이 바로 ‘마음의 병통’인데,
위순상쟁違順相爭이 시위심병是爲心病이다

6. ‘현묘한 종지’를 알지 못하고 공연히 생각만 고요하게 하려고 애를 쓰는구나.
불식현지不識玄旨하면 도로념정徒勞念靜하리라

7. 이 자리는 둥글기가 큰 허공과 같아서 조금도 모자람이 없고 조금도 남음이 없는데,
원동태허圓同太虛하야 무흠무여無欠無餘다

8. 진실로 취하고 버림을 말미암아 그와 같이 못하는 것이다.
양유취사良由取捨하야 소이불여所以不如라

9. ‘인연’을 좇지도 말고‘공함’을 인가함에 머물지도 말아야 하니,
막축유연莫逐有緣하고 물주공인勿住空忍하라

10. ‘하나’(양변을 초월한 마음)를 바르게 품으면 사라져 저절로 다하리라
일종평회一種平懷하면 민연자진泯然自盡이라

11. ‘움직임’을 그치게 하여 ‘고요함’으로 돌아가고자 하면‘고요함’이 다시 더욱 움직이게 되니,
(생각을 억지로 멈추려 하지 말라!)
지동귀지止動歸止하면 지갱미동止更彌動하나니

12. 이는 오직 ‘양변’에 막혀있는 것이니 어찌 ‘하나’(텅 빈 마음)를 알 수 있겠는가?
유대양변唯滯兩邊이라 영지일종寧知一種가

13. ‘하나’를 통하지 못하면 ‘두 자리’에서 공덕을 잃어버리게 되니,
일종불통一種不通하면 양처실공兩處失功이니

14. ‘있음’을 버리고자 하면 ‘있음’에 매몰되고 ‘공함’을 따르고자 하면 ‘공함’을 배반하게 된다.
견유몰유遣有沒有요 종공배공從空背空이라

15.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오히려 더욱 도와 상응하지 못하니,
다언다려多言多慮면 전불상응轉不相應이다

16. 말을 끊고 생각을 버리면 통하지 못하는 곳이 없을 것이다.
절언절려絶言絶慮라야 무처불통無處不通이다

17. 근본에 돌아가면 종지를 얻게 되고 밖으로 비춤을 따르면 종지를 잃어버리게 되니,
귀근득지歸根得旨요 수조실종隨照失宗이니

18. 잠깐이라도 ‘바라보는 자’를 돌이켜 비추면(返照)‘눈앞의 허공’보다 뛰어날 것이다.
수유반조須臾返照하면 승각전공勝却前空이라

19. ‘눈앞의 허공’이 굴러 변화하는 것은 모두 에고의 ‘망령된 견해’로 말미암은 것이니,
前空轉變은 皆由妄見이다

20. ‘참됨’을 구함을 쓰지 말고 오직 ‘견해’를 그쳐야 할 것이다. (오직 모를 뿐!)
불용구진不用求眞이요 유수식견唯須息見이니라

21. 두 가지 견해(옳고 그름)에 머물지 말고 조심하여 추구하지 말아야 하니,
이견부주二見不住하야 신막추심愼莫追尋하라

22. ‘옳고 그름’이 생기는 즉시 어지러워져 마음을 잃게 될 것이다.
재유시비纔有是非하면 분연실심紛然失心이니라

23.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게 되는 것이니 ‘하나’도 또한 지켜서는 안 되니,
이유일유二由一有니 일역막수一亦莫守다

24. 하나의 ‘마음’도 생기지 않으면 만 가지 ‘법’에 허물이 없을 것이다.
일심불생一心不生하면 만법무구萬法無咎니라

25. ‘마음’에 허물이 없으면 ‘법’이 없으며 ‘법’이 생겨남이 없으면 ‘마음’이 없으니(쌍생雙生),
무구무법無咎無法이요 불생불심不生不心이라

26. ‘마음’은 ‘경계’를 따라 멸하고 '경계’는 ‘마음’을 따라 잠긴다(쌍멸雙滅).
능수경멸能隋境滅하고 경수능침境逐能沈이라

27. ‘경계’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경계’이며 ‘마음’은 ‘경계’로 말미암아 ‘마음’이니,
경유능경境由能境이요 능유경능能由境能이니

28. ‘양단’(마음과 경계)을 알고자 한다면 원래 하나의 ‘텅 빔’이다.
욕지양단欲知兩段인댄 원시일공元是一空이니라

29. 하나의 ‘텅 빔’은 ‘양단’과 한 가지라 온갖 형상을 두루 포함하였으니,
일공동양一空同兩하야 제함만상齊含萬象이니라

30. ‘정밀함’과 ‘추함’을 보지 않으니 어찌 치우치게 편당을 지음이 있겠는가?
불견정추不見精麤어니 영유편당寧有偏黨가

31. ‘큰 도’의 본체는 광활하여 쉬울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는데,
대도체관大道體寬하여 무이무난無易無難이라

32. ‘작은 견해’는 여우처럼 의심하여 서두를수록 더욱 늦어지게 된다.
소견호의小見狐疑하여 전급전지轉急轉遲로다

33. 붙잡는 자는 법도를 잃게 되어 반드시 사특한 길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집지실도執之失度라 필입사로必入邪路여

34. 내려놓으면 스스로 그러할 뿐이니 '본체’는 가고 머묾이 없다. (늘 여여如如함!)
방지자연放之自然이라 체무거주體無去住라

35. ‘본성’에 탁 맡기면 ‘도’(진리)와 합하고 그 자리에서 소요하면 번뇌가 끊어진다.
임성합도任性合道요 소요절뇌逍遙絶惱라

36. ‘생각’에 붙잡히면 ‘참됨’에 어긋나며(의식) ‘흐리멍덩함’에 빠지면 좋지 않도다(무의식).
계념괴진繫念乖眞하고 혼침불호昏沈不好니라

37. 좋지 않으면 정신을 수고롭게 할 뿐이니 어찌 멀고 친함을 쓰겠는가? (의식ㆍ무의식의 초월!)
불호로신不好勞神커든 하용소친何用疎親이라

38. ‘일승一乘’에 나아가고자 한다면 ‘여섯 경계’를 싫어해서는 안 된다.
(여섯 경계도 본래 참나의 나툼일 뿐이니 본래 청정하다! 절대로 ‘참나’와 둘로 보아서는 안 된다.)
욕취일승欲趣一乘인댄 물오육진勿惡六塵하라

39. ‘여섯 경계’를 싫어하지 않으면 도리어 ‘바른 깨달음’과 하나가 될 것이다.
(여섯 경계를 둘로 보지 않음이 ‘참 믿음’이며,
이것이 바로 ‘바른 깨달음’이다.)
육진불오六塵不惡하면 환동정각還同正覺이라

40. 지혜로운 사람은 하는 것이 없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를 결박한다.
지자무위智者無爲어늘 우인자박愚人自縛이라
 

41. ‘법’에는 다른 법이 없는데 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여,
법무이법法無異法 망자애착妄自愛着이로다

42. ‘마음’(에고의 알음알이)을 가지고 ‘마음’을 쓰려고 하니 어찌 크게 그르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심용심將心用心하니 기비대착豈非大錯가

43. 미혹하면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생기며 깨달으면 ‘좋음’과 ‘싫음’이 없으니,
미생적란迷生寂亂이요 오무호오悟無好惡라

44. 일체의 ‘양변’은 진실로 짐작으로 말미암음이다.
일체양변一切二邊은 양유짐작良由斟酌이라

45. 꿈이며 환영이며 헛된 꽃일 뿐인데 어찌 수고롭게 붙잡으려고 하는 것인가?
몽환공화夢幻空華를 하로파착何勞把捉가

46. ‘이득’과 ‘손실’과 ‘옳음’과 ‘그름’을 한꺼번에 내려놓아라!
득실시비得失是非를 일시방각一時放却하라

47. 눈이 잠들지 않는다면 (주객의 분별 초월) 모든 꿈이 스스로 사라질 것이며,
안약불수眼若不睡하면 제몽자제諸夢自除요

48. ‘마음’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주객의 분별 초월) ‘만 가지 법’이 모두 한 덩어리와 같을 것이다.
심약불이心若不異하면 만법일여萬法一如다

49. 한 덩어리와 같으면 ‘현묘함’을 체득하여 우뚝하여 인연을 잊게 될 것이다. (주객의 분별 초월)
일여체현一如體玄하야 올이망연兀爾忘緣이라

50. ‘만 가지 법’을 한 덩어리로 관조하면 스스로 그러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만법제관萬法齊觀에 귀복자연歸復自然이라

51. 그 ‘원인’을 없애면 바야흐로 비교할 짝이 없다.
민기소이泯其所以 불가방비不可方比라

52. 고요하면서 움직이면 ‘움직임’이 없고 움직이면서 고요하니 ‘고요함’이 없다. (동정일여)
지동무동止動無動이요 동지무지動止無止니

53. ‘둘’이 이미 이루어질 수 없다면 ‘하나’가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양기불성兩旣不成이니 일하유이一何有爾리요

54. ‘구경’이며 ‘궁극’의 경지라 일정한 법칙이 있지 않다.
구경궁극究竟窮極이라 부존궤칙不存軌則이라

55. ‘마음’이 ‘평등’(자타불이)에 계합하면 ‘경계’와 ‘작용’이 모두 그치게 된다.
계심평등契心平等하야 소작구식所作俱息이니라

56. 여우같은 의심이 깨끗이 사라지면 ‘바른 믿음’(둘 아닌 자리)이 조화롭고 곧도다.
호의정진狐疑淨盡하면 정신조직正信調直이다

57. ‘일체’에 머물지 않으면 기억할 것이 없으니,
일체불류一切不留라 무가기억無可記憶하면

58. 텅 비되 밝게 스스로를 비추면 심력을 수고롭게 하지 않는다.
허명자조虛明自照하면 불로심력不勞心力이라

59. 생각으로 따질 수 있는 곳이 아니면 알음알이로 헤아릴 수가 없다.
비사량처非思量處면 정식난측情識難測이라

60. ‘진여의 법계’는 나와 남이 없으니,
진여법계眞如法界는 무타무자無他無自라

61. 그 자리와 곧장 상응하고자 한다면 오직 ‘둘이 아님’을 말할 뿐이다. (오직 모를 뿐!)
요급상응要急相應하면 유언불이唯言不二로다

62. ‘둘이 아님’은 모두 ‘똑같음’이니 포용하지 않음이 없다.
불이개동不二皆同이다 무불포용無不包容하나니

63. 시방의 지혜로운 사람은 모두 이 종지에 들어갔다.
시방지자十方智者 개입차종皆入此宗이라

64. 이 종지는 짧지도 길지도 않으니 (시간의 초월) 한 찰나가 만 년이며, (오직 지금 이 순간!)
종비촉연宗非促延이니 일념만년一念萬年이요

65. ‘있음’도 ‘없음’도 없으니 (공간의 초월) 시방이 눈앞이다. (오직 지금 여기!)
무재부재無在不在라 시방목전十方目前이로다

66. ‘지극히 작은 것’이 ‘지극히 큰 것’과 같으니 경계가 모두 끊어지며,
극소동대極小同大 망절경계忘絶境界이다

67. ‘지극히 큰 것’과 ‘지극히 작은 것’이 같으니 끝과 겉을 볼 수가 없다.
극대동소極大同小라 불견변표不見邊表라

68. ‘있음’이 바로 ‘없음’이며 ‘없음’이 바로 ‘있음’이니,
유즉시무有卽是無요 무즉시유無卽是有니

69. 만약 이와 같지 않다면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이 아니다.
약불여차若不如此면 불필수수不必須守라

70. ‘하나’가 바로 ‘일체’이며 ‘일체’가 바로 ‘하나’이다. (전체를 한 덩어리로 관함)
일즉일체一卽一切요 일체즉일一切卽一이다

71. 단지 능히 이와 같다면 어찌 공부를 마치지 못함을 근심할 것인가?
단능여시但能如是하면 하려불필何慮不畢가

72. ‘믿는 마음’은 ‘둘’이 아니며 ‘둘’이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
(믿음이 꽉 차면 ‘견성’이니, 둘 아닌 자리 깨달음이 참 믿음!)
신심불이信心不二요 불이신심不二信心이라

73.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없도다. (일체의 이원성 초월!)
언어도단言語道斷하고 비거래금非去來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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