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 10 윤홍식 저
「중용」 제 1장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명하신 것이
우리의 ‘본성’(原象, 본래 모습)이며,
이것(하느님의 뜻ㆍ원상)을 잘 따르는 것이
인간이 걸어야할 길이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하느님의 뜻'이란 우리가 말하는 '원상'(原象)입니다.
우리는 원상을 밝혀낸다 하면
막연히 무슨 신비체험을 한 사람이나 하는 줄 아나,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삶을 살 때
100% 다시 되 밝혀지는 것입니다.
모든 성인은 '내 뜻'(에고의 욕망)대로 말고
'하느님의 뜻'(사람의 원상)대로 사신 분들이니까요.
그래서 기독교에서 예수님이 '하느님의 뜻'(로고스, 진리, 빛, 원상)
그대로 사신 분이라는 의미에서
'진리 그자체가 그대로 육신을 지니고 오신 분'이라고 기리는 것이죠.
예수님도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온 것이 아니고
나를 보내신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모든 성인들이
모두 '하느님의 뜻'을 지상에 이루기 위해
성인으로, 혹은 밝은 임금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기위해서
육신을 가지고 오신 분들입니다.
예전 동방의 성군이시던
순임금께서 우임금께 전한 가르침의 핵심도
"도심(道心-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은 미미하고
인심(人心- 내뜻대로 하는 마음)은 위태위태하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선악'을 정확히 분별해 내면서(精-정밀함)
정신을 하나로 모아서(一, 한결같음)
언제 어디서나 항상 그 '중심'(善- 하느님의 뜻에 치우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정확히 합치되니 中이라고 함)을 잡아라!"는 것일 뿐입니다.
그분들의 삶을 잘 이어받는 사람은
그 사람 역시 성인의 경지에 이르게 되어
'하느님의 뜻'을 명확히 이해하고
매 순간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살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수련시에나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순간에
깨어있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합시다.
"지금 나는 '하느님의 뜻'(원상)에 합치하는가?"
"지금 이 생각은 ‘내 뜻’인가? ‘하느님의 뜻’인가?"라고요.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이 순간 내가 너무나도 당연히 진리라고 아는 것부터 실천하세요.
그리고 그것을 100% 실천하는지 자신을 돌아보세요.
그리하여 이미 알던 것이 100% 내 것이 되고 나면
그 다음 알고 해야 할 것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하느님의 뜻'(원상)부터 시작하여
그것에 온전히 자신을 순복시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와 남에게 모두 행복을 주는 것이 ‘선善’이라는 것을 알며
나와 남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악惡’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우주 창생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이
여러 창조물에 두루 유익한 선에 있고
악에 있지 않다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원상’도
‘선’은 원하고 ‘악’을 피하는 것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매순간 생각ㆍ감정ㆍ행위를 할 때
이대로 살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 '내 뜻'
즉 "나 하나 잘살자!"는 '에고의 욕망'을 따르면서
‘하느님 뜻’(원상)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정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
'들숨ㆍ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통해
‘깨어있는 마음’을 잘 지키고 유지함으로써,
매 순간 '선'과 '악'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다행히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언제 어디서나 '선'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하나씩 개설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서 울려퍼지는
'하느님의 목소리' 즉 '양심'만 잘 주시하면 됩니다.
그리하여 '양심'에 물어 보았을 때
'선'이라고 확신이 드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합치되고, 우리의 '원상'에 합치되는 것이니,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며,
'악'이라고 확신이 드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위배되는 것이며, 우리의 '원상'에 위배되는 것이니,
결단코 실천에 옮기지 마십시오!
매 순간, 매일 이것을 실천에 옮기시고,
이것을 습관화 하십시오.
습관화 되지 못한 선행은 일시적일 뿐입니다.
자꾸 습관화하여 언제 어디서나 무의식적으로
선을 행하고 악을 하지 않는 버릇이 나와야 합니다.
진리에 대한 ‘무지’가 우리를 가로막으면
개인적인 편견이나 이해득실을 떠나서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지혜’로 이를 극복하며,
타인을 무시하는 ‘아집’이 우리를 가로막으면
내 마음을 비추어 보아 남에게 당해서 좋았던 일은 남에게 베풀고
남에게 당해서 싫었던 일은 남에게 가하지 않는
‘자비ㆍ사랑’으로 이를 극복하십시오!
나날이 무지는 줄어들고 아집은 소멸하며,
나날이 지혜는 밝아지고 자비ㆍ사랑은 증장하는 원상을 밝히는 삶을 사십시오.
그리하여 우리가 100% ‘하느님의 뜻’ 즉
‘원상’ 그대로의 삶을 사는 경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야 말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내 뜻'대로 말고 '하느님 뜻'대로 사는 경지이며,
예전 선비님들이 말하시던 “천리(天理-하느님의 뜻)는 100% 보존하고
사람의 욕심(人慾- 에고의 욕망)은 100% 틀어막아라!”라고 하는 경지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원상-복원’의 극치로서,
원상을 100% 다시 복원해 내는 최고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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