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3일 일요일

[윤홍식의 채근담 강의] 5. 역경 속에 나아감이 있다

5. 역경 속에 나아감이 있다


귀에 늘 거슬리는 말이 들려오고
마음속에 늘 어긋나는 일이 있는 것은,
모두 덕에 나아가고
행실을 닦는 숫돌이 된다.

만약 말마다 귀를 즐겁게 하고
일마다 마음을 즐겁게 하면,
이 생명을 붙잡아
짐새의 독 속에 파묻는 것과 같을 것이다.

耳中常聞逆耳之言 心中常有拂心之事 總是進德修行的砥石
若言言悅耳 事事快心 便把此生埋在鴆毒中矣(전집-5장)



우리의 소아적인 마음인
‘인심’이 원하는 것은, 
생각과 감정 오감이 원하는 바를
늘 충족시키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맹자]에서
“우환 속에 살고 안락 속에 죽는다”
(生於憂患 而死於安樂也)라고 하였듯이,
인심이 늘 충족되는 삶은
참으로 위태롭기 그지없습니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고
마음에 어긋나는 일이 많은 것은,
인심에게는 욕구불만을 가져올 것이나
양심에게는 욕구충족의 계기가 됩니다.
  
  
양심을 따르는 행동인 ‘덕’은,
우리가 난관과 곤경을 만나
자신의 심사와 언행을 반성하는 중에 배양됩니다.
[맹자]에서 이르길
“백성을 사랑하는 데도
그들이 나를 친밀히 여기지 않을 때는,
내 ‘사랑’(仁)이 부족하지 않은지 반성하라.

사람을 다스림에 있어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을 때는,
나의 ‘지혜’(智)가 부족하지 않은지 반성하라!”
(愛人不親 反其仁 治人不治 反其智)고 하였듯이,
 
 
매사가 내 뜻대로 진행되고 순조로울 때는
교만해지고 자만에 빠지게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양심’이 어두워지더라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참으로 온몸이 독기가 꽉 찬 짐새의
‘독’에 흠뻑 빠져 죽어가는 격이 됩니다. 

사람은 일이 어그러지고 곤경에 빠져야만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자신이 비양심적으로 굴지는 않았는지,
자신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는지,
그제야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됩니다. 
  

그러니 ‘양심’에게는 역경이 사는 길이며,
순경이 죽는 길입니다.
그래서 하늘이 큰 인재를 낼 때도 
배양할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맹자]의 다음 구절은 참으로
이러한 사정을 여실히 말해주는 구절입니다.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고자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며
그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하고
그 몸뚱이와 피부를 굶주리게 하며
그 몸을 궁핍하게 하고
행동을 함에 그 하는 바를 어그러지고 어지럽게 하니,

‘마음’을 요동하게 하고
‘성질’을 참아내게 하여,
그 할 수 없는 바를 도와서
잘 할 수 있게 하고자 함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은 역경을 만나야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실덕을 반성하며,

단단한 각오로 역경을 이겨내고자 노력하는 중에,
나약한 성질을 극복하고 강인한 마음을 일으켜
양심을 배양하여 ‘덕’으로 나아가고
재주를 배양하여 잘하지 못하던 일을 잘 해낼 수 있게 됩니다.

‘역경’을 기뻐해야 하고
‘순경’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나 우리가 ‘역경’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우리의 덕을 배양하는데 있어서
가장 절실한 부분들입니다.

‘이성’ 문제로 역경에 처한 것은
그 부분의 덕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며,
‘돈’ 문제로 역경에 처한 것은
그 부분의 덕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실 ‘역경’은 우리의 ‘스승’입니다.
우리가 현 시점에서 배양해야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가르쳐주는 최고의 스승인 것입니다.

먼저 곤경과 시련으로 ‘큰 덕’과 ‘큰 재주’를
‘반성’이야말로, 
인심의 과오를 직시하고
양심을 회복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우리는 역경에 처할 때마다,
우리의 부족한 점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덕’에 나아갈 수 있고
‘행실’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심’의 욕구대로만 사는데도
전혀 방해받지 않는다면,
자신이 깨어있는 마음인 ‘양심’을 따르며 살고 있는지
절대로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사람은 인심이 늘 충족되는 상태에서는,
자신의 행실을 반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양심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참된 인간’인 군자로 사는 길은,
‘욕망’이 늘 충족되는 삶이 아니라
‘양심’이 늘 충족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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